(131230)도축장은 오염원이 아니다.(축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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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
작성일 2013.12.31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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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고 부럽다.

지난 1168일간의 일정으로 스페인과 스위스 도축장을 둘러본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렇다.

동물 복지를 고려한 도살 시스템을 바탕으로 내장을 터뜨리지 않는 자동 이분도체 방식과 내장 적출 등 최신 시스템이 완비된 도축장은 왜 유럽이 축산 강국이라고 불리는지를 짐작케 했다.

작업자들의 안전과 편의성을 고려한 설계, 위생·안전을 중점에 둔 작업라인과 인원 배치에선 입이 벌어졌다. 높이가 자동 조절되는 작업대 위에서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박피 작업을 하면서도 견학단들을 보며 웃어주는 여유, 도무지 이곳은 혐오시설인 도축장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머리를 비롯한 적·백내장에 대한 위생적 처리 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물론 일찍이 햄과 소시지 소비문화가 발달해 머리에서 발골된 정육과 각종 적내장들이 가공용으로 활발히 사용되는 배경도 있겠지만 도축장 안에서 내장의 세척과 냉각, 가열 처리가 완벽하게 이뤄지고 있는 부분은 놀라웠다.

혈액처리는 또 어떤가. 쇼트닝 박스에 비닐을 씌워 유통하는 등 전근대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와, 호스가 연결된 나이프로 채혈해 오염원을 사전 차단하는 유럽의 채혈 방식은 단순한 시설 비교를 떠나 자원 활용에 대한 원칙에서 큰 차이가 느껴졌다.

그렇다. 유럽의 도축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초현대식 시설이 아니라 자연과 자원 활용에 대한 의지와 자세였다. 여기다 위생·안전성 검사를 위한 충분한 인력 확보, 이상육 및 내장을 철저히 가려낼 수 있게 설계된 작업 시스템은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상품만을 공급해야 한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집약적 성장을 지속해온 우리 축산업은 생산 부문의 동력을 통해 산업발전을 도모해왔고, 정부의 지원도 이에 집중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축이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 위한 최종 관문인 도축은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이자 축산물의 품질과 위생 수준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정임에도 지원과 육성에는 사각지대에 놓인 채 상대적인 박탈감과 소외감이 적지 않았다.

물론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는 작업장 위생문제, 비위생적 부산물 가공 등은 우리 도축업계의 어두운 일면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역시 영세한 환경 속에서 자생해온 도축 업계의 상처이기도 하다. 더욱이 최근에는 업계의 현실을 무시한 채 특정수질 유해물질 배출을 놓고 극단적 행정처분까지 현실화 하고 있는 것은 도축산업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불도저식 정책의지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고 씁쓸하다.

도축장은 혐오시설이나 오염원이 아니다. 우리 국민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한 필수적으로 거쳐야할 작업장으로 육성되고 발전시켜야 마땅하다.

도축산업의 미래는 곧 우리 축산업의 미래이다. 축산선진국일 수록 도축장에 왜 그토록 앞선 투자와 지원으로 산업 발전을 도모했는지 곱씹어 보았으면 한다.

 

 

< 2013년 12월 30일 - 축산경제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