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산물처리협회에 따르면 농협경제지주는 오는 11일부터 농협 음성·부천 축산물공판장의 박피도축을 중단한다. 경기 안양에 위치한 협신식품과 인천의 삼성식품 도축장, 부경양돈농협의 김해축산물공판장도 11일까지 박피작업 라인을 철거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도드람엘피씨공사는 11월17일부터, ㈜팜스코는 12월1일부터 박피도축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박피도축을 해온 국내 도축장 모두 탕박도축만 실시하기로 하면서 지육에서 껍데기를 제거한 박피돼지는 2018년부터 거래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박피로 거래되는 전체 돼지 가운데 약 30%를 차지하는 어미돼지와 수퇘지에 한해서는 박피도축이 이뤄진다.
도축장들의 이러한 결정은 돼지고기 안전성을 우려한 소비자단체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소비자단체는 박피돼지가 가죽을 벗겨낸 상태로 운송되기 때문에 털만 뽑은 탕박돼지에 비해 위생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여러차례 제기해왔다. 이에 69개의 도축업체로 구성된 축산물처리협회는 9월 열린 이사회에서 올 연말까지 모든 도축장에서 박피도축을 중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도축장들의 연이은 박피도축 중단 소식에 소비자단체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연화 소비자공익네트워크 회장은 “축산물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높은 관심을 양돈업계가 반영한 것”이라며 “당초 계획대로 올 연말까지 박피도축이 완전히 중단되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돼지고기 위생 강화와 함께 그동안 논란이 됐던 돼지값 왜곡현상도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농가와 육가공업체들은 돼지를 거래할 때 박피가격을 기준으로 돼지값을 정산했다. 문제는 박피물량이 전체 돼지 거래량의 2%에 불과해 박피가격이 대표성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2016년 전국 돼지 거래량(1652만4269마리) 가운데 박피물량은 2.1%(35만3879마리)에 머물렀다.
거래량이 적어 탕박가격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박피가격이 돼지값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활용되다보니 적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육가공업체의 경영난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국내 돼지값을 전체적으로 높인 게 대표적 사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박피도축을 중단하면 가격이 고시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박피가격을 기준으로 활용할 수 없어 그동안 논란이 됐던 돼지값 정산체계의 불합리한 부분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박피도축이 중단돼 기준가격이 사라지면서 탕박등급제 도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탕박등급제는 돼지 생체가 아닌 지육 중량과 품질을 기준으로 가격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이선우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 국장은 “일부 유통업체는 이미 탕박등급제를 적용해 돼지값을 정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축장들의 박피도축 중단으로 탕박등급제의 필요성이 커진 만큼 현재 많은 유통업체가 등급에 따른 인센티브나 페널티 적용 기준 등 세부적인 사항을 조정하며 탕박등급제를 도입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도축·유통업계와는 달리 양돈농가는 일정기간 동안 박피도축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한돈협회 관계자는 “아직 박피돼지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도축을 완전히 중단해선 안된다”면서 “탕박등급제가 자리 잡을 때까지 박피도축 중단을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