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장 변천사
도축장만큼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진 곳도 없을 것이다. 1980년대까지는 도축장 수를 줄이는 물리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90년대 이후에는 들어서면서는 HACCP 등 위생 등을 통해 질적인 기준을 통해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특히 2008년에는 도축장 구조조정법이라는 특별법까지 제정되면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국내 여건상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도축장이 지속적이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져 온 것은 도축장의 역할이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도축장은 가축이 축산물로 전환되는 첫 관문이다. 때문에 도축장에서 축산물이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따라 축산물의 위생 품질이 결정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른 어느 유통 단계보다 철저한 위생관리가 필요하다. 이에 그 동안 도축장의 구조조정이 어떻게 이뤄져 왔나 살펴보고자 한다.
>>1980년대
1970년대 전국에서 운영 중에 있던 도축장은 500여개소가 넘었다. 특히 80년대까지만 해도 물먹인 소 파동, 불법도축 등은 뉴스의 단골 메뉴였다.
뿐만 아니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내 축산물 위생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도축장 권역화를 추진하며 300개가 넘는 도축장을 65개소로 통폐합하는 정비계획을 수립해 추진했다.
그러나 당시 물류체계나 소비시장과 콜드체인시스템 등의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함에 따라 구조조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1990년대
80년대는 단순히 도축장 개수를 줄이는 물리적인 방법이 동원됐다면 90년대에는 도축장 시설현대화를 통한 시장에서의 차별화를 통한 구조조정 방법이 동원됐다.
1991년 도축장 정비 및 현대화 방안이 마련된 이후 도축장 현대화를 통한 구조조정이 시도됐다.
대표적인 사업이 축산물종합처리장 계획이었다. 정부는 낙후된 도축장 시설을 현대화함으로써 시장에서 축산물의 차별화 전략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1994년 축산물종합처리장 사업을 시작하면서 전국에 총 12개소의 축산물종합처리장을 설치하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특히 축산물종합처리장의 경우 도축에서 가공까지 모든 과정을 한 장소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함으로 축산물의 위생과 유통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는 복안도 있었다.
그러나 사업이 진행되면서 과도한 투자와 시장성이 부족해 사업자들이 포기하거나 부도가 속출하면서 9개소를 줄어들었다.
그마저도 운영과정 중에 현재는 제 3자 매각 등으로 인해 당초 계획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축산물종합처리장 등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도축시설의 현대화가 이뤄지면서 축산물 위생관리가 한층 강화됐다는 점은 그나마 성과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물리적인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도된 것이 위생 등 질적 차별화를 통한 구조조정을 시도하게 된다.
정부는 모든 도축장에 HACCP를 적용시킴으로써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2000년도 도축HACCP를 도입했으며 2004년까지 전국의 모든 도축장에 HACCP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처음 도입 당시만 하더라도 시설 개보수 등으로 소요되는 예산이 수십억원에 이르는 만큼 영세 도축장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으로 예상했다.
더욱이 초기에 HACCP인증을 획득한 도축장의 경우 실제로 수십억원이 소요된 것은 물론 인증 받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비용과 노력이 적게 들면서 대부분의 도축장들이 HACCP인증을 획득하고 운영 중에 있다.
다음으로 꺼내든 카드는 HACCP 인증 도축장에 대한 등급제이다. 물론 겉으로는 민간 자율적인 평가였지만 상위, 중위, 하위 등급으로 분류해 각종 인센티브 지원 등을 통해 차별화했다.
이처럼 HACCP는 축산물 위생 수준 향상을 위해 도입했지만 이면에는 도축장 구조조정의 역할도 해주길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ACCP인증이 시장에서 차별화되지 못함에 따라 도축장 구조조정에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90년대 도축시설 현대화로 차별화 유도
HACCP·등급제 도입, 위생수준 진일보
도축능력 향상 불구 가동률은 날로 줄어
과당경쟁 동반부실 차단…경쟁력 높여야
>>도축장구조조정법 시행과 과제
시설차별화, 품질차별화를 통해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을 기대했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도축장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국내 가축사육마리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반면 도축장의 경우 시설현대화 등으로 인해 도축능력은 가축사육마리수를 휠씬 상회함에 따라 도축장들의 경영난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농협산하 공영도매시장과 민영도매시장 등을 제외하고 일반 도축장의 경우 하루 작업량이 소 10두 이하, 돼지 100두 미만으로 도축능력 대비 소는 10% 미만, 돼지 50% 미만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로 인해 영세 도축장들은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도축업계는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이를 위해 마련된 것이 도축장구조조정법이라는 특별법이다. 남아 있는 도축장들이 기금을 모아 퇴출되는 도축장들에게 폐업 보상금을 지원해 주는 것이다.
매년 구조조정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계획대비 실적은 미비한 상황이다.
>>거점도축장 지정
농림축산식품부는 2010년 지역별 거점 도축장 지정, 육성 등을 포함한 보다 강력한 도축장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협동조합형 패커 육성과 함께 거점도축장을 민간 패커로 육성, 도축·가공·유통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진행형인 거점도축장 육성이 앞으로 도축장 구조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좀더 두고봐야 한다는 것이 도축업계의 시각이다.
도축업계는 그 동안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도축장 구조조정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무의로 돌아간 만큼 도축장구조조정법이나 거점도축장 육성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장 흐름과 연계돼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도축장은 축산물 안전 검문소”
한국축산물처리협회 김 명 규 회장
현장서 체감할 수 있는 구조조정 역점
숙원사업 육류연구소 생산자 공감 절실
“도축장은 축산물 안전의 검문소이다.” 김명규 한국축산물처리협회장이 몇 년 동안 계속 강조해왔던 말이다.
“살아있는 가축을 검사하고, 도축 중에도 지육과 내장검사를 통해 가장 먼저 안전성을 확인하는 곳이 바로 도축장이다.” 김 회장은 이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축장은 일반인의 접근이 어렵고, 혐오시설이라는 선입견과 산업 종사자의 폐쇄적인 사고 등이 중첩되면서 가치와 역할이 과소평가되어 왔다고 말한다.
도축장 업계가 소비자와 생산자는 물론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바로 구조조정이라고 강조한 김 회장은 “축산물처리협회가 수년간의 노력으로 과잉된 도축장 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제정된 도축장구조조정특별법도 현장에서 체감하는 구조조정과는 괴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도축장 구조조정이 촉진될 수 있도록 과감한 정책지원이 있어야 한다. 수입축산물과 최전선에서 싸우는 도축장의 위생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규모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지난 5년간 분담금을 걷어 폐업자금을 주면서까지 구조조정을 추진했지만 효과가 미미했다며 아쉬워했다. 정부가 정책결정 시 현장 전문가와 사전에 충분히 협의했으면 한다고.
“현장과 동떨어져 자주 변경되는 법은 만들어질 때부터 이미 사문화돼 혼란만 초래하고 축산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말한 김 회장은 마지막으로 “도축가공업계의 숙원사업인 덴마크의 DMRI와 경쟁할 수 있는 육류연구소를 설립하는데 생산자들도 그 뜻에 공감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육류에 대한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위생과 품질에 집중해야 경쟁력이 강화되기 때문이란다
<2013년 3월 27일 축산신문 기사>